이 질문을 들으면
가끔 기독교가 천국 출입국관리소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 아십니까?”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분.”
이순신 장군은
예수님을 거부한 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 들을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 안 믿었으니 지옥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복음이라기보다
정보 격차에 따른 영원한 처벌입니다.
태어난 시대와 나라가 달랐다는 이유로
영원히 심판받는다면,
천국 입장 조건은 믿음보다
출생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조선에 태어난 게 죄입니까?
성경도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도
양심과 마음에 새겨진 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하실 때
“교회 전도지를 받아봤느냐”만
확인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심판의 장면에서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시게 하고,
병든 사람과 갇힌 사람을 돌본 일을 두고
“너희가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 사람들은 심지어 묻습니다.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그렇게 했습니까?”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 이름을 얼마나 정확히 알았는지가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십니다.
그러면 이순신 장군이 천국에 갔느냐고요?
모릅니다.
저는 천국 인사과 직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최종 목적지를
우리가 결정할 권한도 없습니다.
다만 이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사랑이고 정의라면,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대와 환경,
그가 알 수 있었던 것과 알 수 없었던 것,
그의 양심과 삶과 선택을
우리보다 훨씬 더 정확히 아실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남이 지옥 갔는지를 궁금해할까요?
우리 천국 자리 부족할까 봐 그러는 겁니까?
천국이 고시원입니까?
방이 열 개밖에 없어서
이순신 장군 들어오면 내가 나가야 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옥 보내는 자격증을 따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게 주어진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다른 사람을 더 겸손하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니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좋겠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지옥에 갔을까요?”보다
“나는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이순신 장군만큼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이 훨씬 불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첫 번째 질문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남의 구원은 토론하기 쉽지만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은 꽤 귀찮거든요.
결국 구원은
우리의 판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에게 맡겨도 될 일을
굳이 우리가 대신 심판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아마
우리보다 훨씬 공정하고,
다행히도
우리보다 훨씬 자비로우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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